경계와 공부
살아가다 보면 역경을 만나기도 하고
순조로운 경계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경계'라는 점입니다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은 이 경계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입니다
전문적으로 수행하시는 분들은
그 두 경계를 분별하지 않는 경지를 향하여 공부를 지어나아가는 것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경계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나아가는 정도만 성취하셔도 큰 공부하신 분이십니다
마음공부에서는 반드시 '콩심으면 콩이나지' 팥이 생겨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깨달음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더라도 뿌린만큼 거두는 농사가 마음공부입니다
이러한 마음공부는 '경계'를 대상으로 지어 나아가는 공부입니다
말하자면 '경계'가 없으면 마음공부도 없는 이치입니다
경계에 전혀 끄달리지 않는 그러한 경지를 무위(無爲) 무심(無心)의 경지라 합니다만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마음공부를 지어 나아가다 보면
어느정도 경계에 초탈한 안심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천목중봉 스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무 영험이 없는 것은 세가지 이유가 있으니
첫째 고인들과 같은 신실한 지기가 없고
둘째 생사와 무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일대사를 삼지않고 있으며
셋째 무량겁래에 익혀 온 버릇을 놔 버리지 못하는 데 있으니
온종일을 비록 남을 따라 화두를 든다고는 하나
좌복에 앉자마자 혼침과 산란에 그저 둘러 싸여 있으며
또한 구원 불퇴전하리라는 신심도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어려운 일이다
저절로 성불하는 자연 석가와 천생 미륵이 어데 있다더냐? 요즘 볼 것 같으면
소견머리 없는 사람들이 제 자신 애쓰지 않는 것은 꾸짖지 않고 도리어 말세라고 한탄하면서
종단꼴이 어떻고 총림꼴이 말 아니라 입버릇처럼 하면서
우리를 단련하는 선지식도 없고 같이 공부할 도반도 없다 하며
게다가 방사가 불편하고 음식이 맛이 없고
대중의 규칙이 시원찮고 환경이 시끄럽다는 등
짜증을 내면서 이 때문에 공부가 안된다 하니 이런 말은 누구나가 하는 소리라
이것은 마치 농부가 비가 안 와서 가뭄이 심하다고 핑계를 대며
김을 매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 무슨 결실을 바랄 것인가
다만 공부인은 역순경계를 대하여 한 생각이라도 분별하려고 들면
그저 그것을 만겁생사의 허물 속에 얽혀 묶이는 터진이 되고 만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은 것이다
마음공부가 '경계'를 대상으로 지어가는 공부라고 하는 말에는
그 마음공부가 어떠한 장소에서도 가능한 공부라는 뜻이 감겨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모습은 참으로 실소를 자아내게 만듭니다만
현실세계라고 해서 다를까요?
역시 각양각색의 경계를 따라 요동치는 것이 우리들 마음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좋다고 요동치고
싫다고 요동치고
분하다고 요동치고
반갑다고 요동칩니다
경계를 만나 공부를 하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면 그분이 공부인이고
경계를 만나 그저 요동치면 공부를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말하자면 그 경계가 역경이든 순경이든 간에 공부하려고 마음 먹으면 그 경계는 선지식이 되고
경계를 따라 울고 웃기만 한다면 그 경계는 우리를 지옥에 빠뜨리는 미끼가 됩니다
그 조그마한 차이가 결국엔 부처와 중생이라는 차별을 만드는 차이입니다
혼자 있어도 색성향미촉법이라는 경계는 항상 따라 다닙니다
그러하니 환경을 탓하고 역경을 탓하는 것은 공부 짓는 방법에 무지한 소치인 것입니다
오히려 역경에서의 공부가 여물고 마장을 상대로 한 공부가 고준한 공부입니다
누가 나를 화나게 해서 나에게 분노가 일어나면
그 경계를 선지식 삼아 공부하십시오
그러면 도처에 선지식을 모시고 공부하시는 훌륭한 불자님이십니다
성불하시길 빕니다
-동화사 허운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