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明속의등불~★/洗 心 說(법문)

기도하면 마장이 많은가-지광스님

진여향 2008. 4. 30. 20:23

평범한 생활을 하는 사람과 수행을 하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법당에 나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있는 것일까?

 

흔히 기도를 시작한 사람들,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들 가운데 갖가지 마장에 시달린다는 얘기들을 듣는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정말 마장이 많은 것일까?

그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그럴 수 있다’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평범한 생활을 하면 서서히 마장이 나타나겠지만

수행을 하면 마장이 급속히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흡사 병을 치료할 때 병이 낫기 전 명현현상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하면 업장이라는 것이 부서져 나가면서 고통이 가중되는 원리와 비슷하다.

가만히 두면 서서히 무너지겠지만

열심히 의도적으로 부수려 한다면

짧은 시간 내에 압축해서 치러져야 하기 때문에 고통이 가중될 수가 있는 것이다.

 

기도는

적극적인 업장소멸이고

선근의 증장이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면 그만큼 업장소멸이 빠르게 진전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마장이 승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바람 폭풍우가 몰아친 후에는

필연적으로 평온한 날이 찾아들 듯

그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면 분명히 평온한 날이 찾아들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확신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흡사 농사짓지 않는 사람에 비유할 수 있다.

 

농사짓지 않는 사람,

잡초를 제거하지 않는 사람은 편하다.

그러나 수확의 날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수확을 하더라도 큰 것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

반면에 농사지으며 잡초를 제거하는 사람은 힘겹다.

하지만 수확의 기쁨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수행은 이런 농사의 이치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성불을 목표로 사는 불자들에게 수행하는 것,

기도 정진하는 것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일 수가 없다.

기도하는 삶,

수행하는 삶은 그 자체가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며 필수인 것이다.

 

그 같은 길은 다른 사람,

평범한 사람들보다 훨씬 힘겨운 길일 수밖에 없다.

고통스럽고 끊임없는 마장과의 싸움이며 극복자의 삶이다.

그러나 그 길은 영광의 길이고 무량복덕과 지혜의 길이다.

그 길은 수행자의 필수코스이다.

선택적 차원이 아니다.

수행하지 않는 삶, 기도하지 않는 삶이란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기도하는 삶,

수행하는 삶은 미래에 무엇인가 기대할 것이 있다.

그래서 기도는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들의 특권이다.

그 반대인 독심 가득한 삶이란 병원균 같은 것,

수행하지 않는 삶이란 스스로를 해치는 삶과 진배없다.

독심을 일으키는 순간,

이미 나의 몸과 마음이 오염되고 업보가 쌓인다.

기도하는 삶은 업을 소멸하는 삶인데

그 반대로 이기심 가득한 독심은 업을 쌓아간다.

결국 재앙의 길 일수 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이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에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사람들이 세를 불려 가면

병균이 득세해 암이 폭발하고 세계가 재앙에 휩싸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지구라는 생명체가 몸살을 앓고

전 지구적인 재앙에 직면해 있는 이유 역시

이 같은 인간의 독심의 연장선상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지구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대한 암을 제거하기 위한 대대적 수술이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 같은 상황은 아마도 사라진 환상의 대륙 아틀란티스의 재판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진실로 지구인들의 근본적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고

승단의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이유이다.

이들을 가르칠 위치에 있는 수행자들이

이미 사회를 교정하고 이끌어 가는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고

더불어 사는 의미를 가르치기에 실패하고 있다.

참으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실대는 지구호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아! 눈을 뜨고 바라보기가 참담하고 또 참담하다.

 

서울 능인선원 원장 지광 스님 / 947호 [2008-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