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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은 왜 하는가-조계종포교원

진여향 2008. 12. 2. 08:50

참선(參禪)을 왜 하는가?

깨쳐 부처가 되기 위해서 합니다.

부처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가?

자기 마음을 깨치면 영원한 자유와 행복인이 됩니다.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깨치면 인간의 가장 근본 고통인 죽음의 문제를 비롯한

온갖 괴로움을 일시에 해결하고 영원한 행복에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사이 불교계에서 선 특히,

간화선에 대한 오해가 상당히 확산되고 있어 이 자리를 빌어 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흔히 불교학자나 교리에 밝은 분들께서 한국불교 그 중에서도

조계종의 전통 간화선 수행을 비판하면서

 “깨달음이 아니라 행복이 수행의 목표이어야 한다” 하거나

“깨달음을 목표로 하는 수행법은 잘못된 것이다” 라고 주장의 글을 자주 접합니다.

 

저는 이러한 비판이 간화선을 하는 조계종의 수행자들이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채 산중 선원에서 정진만 하고

교학이나 다른 수행법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이해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저도 상당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비판은 정견으로 해야지 잘못하면 구업을 짓는 것이 됩니다.

깨달음을 논함에 있어 그것이 불교적 시각으로 한다면,

불교의 근본 목표는 깨달음에 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석가모니 자신의 깨달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인류 이래로 생로병사의 고통과 행복은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에 대한 수많은 종교와 철학 사상이 발생되어 소멸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오직 자기 마음을 깨쳐 생로병사의 문제를 영원히

 해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깨치면,

즉 견성성불하면 생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행복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처님의 근본 뜻을 뒤로 하고 수행의 목표를 수정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불교의 근본을 뒤흔드는 발상으로 준엄한 경책이 필요합니다.

성철스님도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요, 깨달음으로 만세의 표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으면 생사를 해탈하여 영원한 자유와 행복에 든다고 했습니다.

 

깨달음과 행복을 나누어 수행의 목표를 이것이니 저것이니 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이 아직 시비분별의 양변을 여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한 마디로 번뇌망상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깨칠 수 있는가?

불교에서는 특히, 禪宗에서는 본래부처(本來是佛)라 합니다. 즉,

우리는 이미 본래 부처라는 것입니다.

왜냐? 우주만물이 연기(緣起)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주만물이 연기로 존재하기에 하나입니다.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우주가 하나이고, 부처와 중생이 하나이며, 나와 남이 하나입니다.

 선과 악이 하나이고, 정신과 물질이 하나입니다.

이를 일러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지요.

우주의 존재원리인 연기는 이미 우주에 보편되어 있습니다.

이 보편되어 있는 연기를 자기 마음에서 보는 게 견성성불입니다.

 

본래 부처인데 왜 깨친다고 말하는가?

우리는 본래 부처인데, 번뇌망상에 가려서

 자기의 본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때가 낀 거울이 있다 합시다. 이 거울은 본래 깨끗하였으나

때가 끼어 바로 비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를 제거하면 거울은 본래 있는 그대로 사물을 비추게 됩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때가 끼어 본 모습을 볼 수가 없지만,

번뇌망상을 닦아 내면 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번뇌망상을 제거하여 본 마음을 보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자기 마음에 찌든 번뇌망상을 없애 가는 게 불교 수행입니다.

 

불교 수행법에 참선, 염불, 간경, 주력, 위빠사나 등 여러 가지가 있고

모두 훌륭한 수행법이지만, 부처님이나 역대 선지식들께서는

참선을 가장 지름길이라 했습니다.

참선 중에서도 특히 간화선(看話禪) 수행이란

화두로 이 번뇌망상을 제거해 나가는 탁월한 수행법입니다.

선지식에게 불법을 물었는데 선지식이 일러준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화두로 삼아

일심으로 참구하여 화두가 움직일 때나 조용할 때(동정일여)나,

자나 깨나 한결 같은 경지(오매일여)에 이르러도 계속 참구하여

마침내 확철대오를 하게 되면 자기 본 마음을 찰나간에 깨치는 것입니다. 

 

특히 간화선은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자기 개발이 필요한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행법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禪이란, 話頭란,

번뇌망상에 허득이며 사는 착각세계를 깨는 검(劍)과 같은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번뇌망상에 끄달려 사는 삶을 꿈 속의 삶으로 비유합니다.

한시도 생각의 흐름이 지속되지 않고

옳고 그름, 있다 없다, 나다 너다, 선과 악, 니편 내편 등등

시비 분별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시비 분별심이 있는 한 스트레스와 고통, 화, 욕심은

우리 삶을 진절머리나게 괴롭힙니다.

 

그러나 화두를 참구하여 확철대오하면

번뇌망상의 불을 끄게 되어 마치 꿈을 깬 것과 같이

환하고 밝은 지혜광명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영원히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 열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지금까지 말씀드린 마음 공부법을 요약하자면,

1. 화두 공부 이전에 먼저 불교 교리를 철저히 공부하여 정견(正見)을 세워야 한다.

2. 정견을 세우고 내가 본래 부처라는 불퇴전의 믿음과 영원히 행복한 삶을

위해 깨치고자 하는 마음   즉, 신심과 발심을 내어야 한다.

3. 정견이 서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려는 신심과 발심이 나면 선지식을 찾아

   친견하여 공부 방법을   묻고 화두를   받아 참구해 나간다.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             

                                                                      

                                      (조계사 포교원 연구차장  박 희승)

 

수행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깨달음이 되어야 하며 이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또한 본장에서 간화선을 최고로 지양했엇지만 이는 모든 수행의 근거에 ,

즉 염불 절등에서도 간화선은 떨어지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수행에 있어 각자의 근기에 따라 방편이 다르겠지만 본질적으로

어떤 수행이든 간절하면 화두로 들어서는 귀로에 들게 됩니다.  

 

조계종 포교원의 참선 연구를 올림은

각각의 수행을 구분 코자 함이 아님을 말할것 이라 생각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