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明속의등불~★/신행길라잡이

계율 수행시 주의사항

진여향 2006. 9. 17. 09:02

계율수행시 주의할 점

 

타협하지 말라

계율은 적당히 타협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죄의 허물은
큰 것이니 목숨 걸고 지켜야 합니다.
삿된 것과는 결코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소한 것이라 가벼이 여긴다면
그 결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계심을 잃게 되어

결국은 수행을 파하게 됩니다.

 

계율은 나침반과 같고 안내자와 같다고 했는데

이것이 흔들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구명부대를 몸에 달고 바다를 건너려 할 때

바다 속에 있던 나찰이 이 사람에게 구명부대를 달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듣고 생각하기를
'이것을 주면 나는 반드시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다.'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차라리 나를 죽일 지언정 구명부대는 줄 수 없다"하였더니

나찰이 또 말하기를
"그대가 만일 전부를 줄 수 없거든 반이라도 갈라 달라"한다.
그 사람이 그래도 주지 않으려 하였다.

 

나찰은 또 "그대가 반도 줄 수 없거든 3분의 1이라도 달라" 하였으나 그래도 주지 않았다.

나찰은 또 "그것도 할 수 없으면 손바닥만큼 달라"하나
그것도 주지 않았다.

 

나찰은 다시 말한다.

"그대가 만일 손바닥만큼도 줄 수 없으면

내가 배가 고프고 고통이 심하니 티끌만큼이라도 달라"하였다.

그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네가 달라는 것은 얼마 되지는 않는다마는
내가 지금 바다를 건너가려 하는데 앞길이 얼마나 먼지 모르는 터에
조금이라도 네게 준다면 거기에서 기운이 점점 새어 나올 것이니
드넓은 바다를 어떻게 건너가며 물에 빠져 죽는 일을 면할 수 있겠느냐"하였다.

 

선남자여 보살마하살이
계율을 수호하고 지니는 것도 그와 같아서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이 구명부대를 사랑하고 아끼는 것과 같느니라.

대열반경 11권 성행품


열반경의 비유는 계율수행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배에 물이 샌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그 배는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계율도 이와 같습니다.


계율을 어기고도 자기 편리할 때로 합리화시키며
이것은 사소한 것이니까 괜찮을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이는 계의 뿌리를 파괴하는 것이요,
결국은 전부를 잃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계율수행에 있어서
적당한 타협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범개차를 배우라

계를 지킬 때는 열반경의 구명부대의
비유처럼 목숨같이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지키는 것만 알고 파하는 것을 모르면

또한 계에 얽매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때에는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어떤 것에 의하여 계를 파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잘 알아서 열고 막는 법을 행하는 것이 지범개차입니다.

 

쉬운 예로 도망 온 사슴을 감춰 주고
사냥꾼에게 어디로 갔는지 못보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

그 나무꾼은 복을 받는 것처럼 계율수행에서도
지켜야 할 때와 어겨야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불교의 핵심사상은 중도에 있습니다.
어느 것이나 한 쪽에 치우치면 불교 수행이 아닙니다.


계율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에 치우쳐 근본 뜻을 잃는다면
바른 수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계율 수행에서 지범개차라고 하는
불교 특유의 실천법이 있는 것이니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계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자유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자의적으로 빠질 때에는
자칫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따라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한데

보살선계경에서는
보리심이 기준이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두 가지 인연이 있으면 보살계를 잃게 되나니,
첫째는 보리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둘째는 상악심을 갖는 것이다.

 

계율수행은 삿된 것을 버리고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재대로 분별하여 실천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보살계를 잃게 되는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첫째는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항상 나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계율수행자가 항상 나쁜 마음을
가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리심에서
물러나지만 않으면 보살계를 잃지 않습니다.

 

마음이 잘 따르고
(행동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하나되어 행함)

지혜로써 분별해야
(어떻게 하는 것이 삿됨을 버리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어떤 것이 진정한 이타인지 등을 잘 알아서 계를 지킴)
계율수행을 바르게 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계를 열고
막음에 걸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즉, 언제나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근본 뜻에 비추어 현실의 상황에 즉해서
그것을 구현하는 것이 계율 수행의 바른 태도입니다.

 

타인과 비교하지 말라

계율수행을 하면서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나는 계를 지킨다는 상을 가지고 교만한 마음을 내어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고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이는 공동체의 화합을 깨치며 자비심을
없앰으로 오히려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의 상이 본래 없으며 나와 내 것이
없으므로 계를 지켰다거나 어겼다고 할 만한 정해진 모양이 없는 것이니
겉모양을 가지고 시비를 논할 일이 아닙니다.

 

계율 수행을 할 때에는 오직 자신을 관찰하고
한치도 어긋남이 없게 하는 데 힘쓸 것이지
다른 사람을 보고 시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집에 있는 보살이 계율을 깨뜨린 비구를 보면

성을 내거나 업신여겨서는 안되고 가엾이 여기며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내면서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열 가지 선한 도를 행해야 비로소 사람 몸을 얻는
것인데 법답게 잘 쓰고
자신을 이롭게 할 수 없으니 애닯구나'

 

만약 도무지 성내거나 업신여기는
마음을 여읠 수 없다면 스스로 생각하라.

경전 중에서 말씀한 것과 같이 부처님은
아난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만약 사람이 다른 이를 헤아리면 곧 자신의 몸을 상하는 것이요,

오직 자기만은 헤아릴 수가 있고 중생이나와 평등하면 역시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십주비바사론 입사품

 

지혜가 부처님의 지혜와 같지 않고 중생에 대해
동체대비심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대해
평가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떤 시비를 논한다면 그것은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 했거나 자신의 편견이 개입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해 거슬리는 부분이 생기거든
먼저 자신의 내면을 살펴 자신이 만들어낸
인상이 아닌지 잘 봐야 할 것입니다

 

자료: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