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님 법문을 새해에 맞춰 준비를 했습니다. 마침 2007년 특별 법문이 있네요. 천천히 음식을 되새김질 하는 소처럼 찬찬히 법문을 마음에 새기면 좋을듯 합니다.
새해에는 더 부지런히 자신을 돌아보는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전 요즘 그것이 어렵네요. 명상을 하고 왔으면 더 너그러져야 하는데 날카로운 감정선이 살아있는 저를 봅니다. 저도 스님 법문을 듣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보렵니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돈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집이 더 컸으면 좋겠다, 차가 새 것이면 좋겠다, 뭐 어땠으면 좋겠다고 바랍니다. 하지만 아마 그것이 다 이루어진다고 해도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미래세대는 우리가 원하는 그런 것들이 다 이루어진 세상에 살면서도 어쩌면 우리보다 더 여유가 없고 더 불만이 많을 것입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클 때와 요즘 아이들 클 때를 비교하면, 요즘 아이들은 훨씬 가진 게 많으면서도 제가 클 때보다 불평은 많습니다. 그처럼 인간의 행복은 그런 의식주나 물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요?
첫 번째, ‘작은 일에 만족하기’ 입니다. 만족하면 그게 바로 행복이에요. 아무리 큰 것이 주어져도 만족하지 못하면 그게 괴로움입니다. 아침에 눈을 탁 떴을 때, ‘아, 오늘도 살아있구나.’ 하고 살아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두 다리가 있어 걸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두 손이 있어서 뭔가 만질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이가 있어 음식을 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고, 옷을 말끔히 입고 나갈 수 있어서,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서, ……, 이렇게 자신의 일상 속에 주어진 조건들에 대해서 만족한다면 인생이 행복합니다. 매사에 만족한다면 매사에 행복하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불만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계시는 분은 부모 때문에 괴로워하고, 부모가 돌아가신 분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불효한 것을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남편이 있는 사람은 남편 때문에 괴롭고 남편이 없는 사람은 없어서 괴롭습니다. 그러나 한 생각을 바꾸면 부모님이 계시는 분은 효도할 수 있어서 좋고 남편이 없는 사람은 남편과 가족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는 있는 것은 있어서 괴롭고 없는 것은 없어서 괴로운데, 매사에 만족하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면 없는 것은 없어서 좋고 있는 것은 있어서 좋은 겁니다. 인생의 행복은 그것을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불평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그래서 일상에서 행복하기 위한 첫 번째 길은 ‘작은 일에 만족하기’ 입니다.
두 번째는 ‘매사에 감사하기’ 입니다. 만족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만족한 마음이 들면 감사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것에 만족하면 바로 그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고, 두 눈이 있어서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두 눈이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가서 1년 정도 자원봉사를 했는데 그 곳에서 사용하는 물은 늘 황톳물이었다고 해요. 마시는 물도 그저 뿌옇기만 한데 그것도 어렵게 구해서 마셨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1년 동안 살다 와서 제게 하는 말이 자기는 한국에 사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풍요로울 수가 있느냐는 것이지요. 무엇 때문에 그런가 물어봤더니 “저 요즘은 날마다 하얀 물로 목욕하거든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냥 ‘물’이라고 하는 것을 그 사람은 하도 황톳물만 쓰다 와서 ‘하얀 물’ 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하얀 물’을 가지고 목욕할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세 번째는 ‘남의 마음 알아주기’입니다. 우리는 같이 사는 아내나 남편한테 할 말이 많습니다. 부모도 자식한테 할 말이 많지요. 자식도 부모에게 할 말이 많고 남편도 아내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나의 답답한 마음을 얘기하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마음을 내 놓을 곳이 없어요. 그래서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들어주기의 핵심은 알아주기입니다. 꼭 귀로 듣는 것만 들어주기가 아니라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관세음(觀世音)’이라고 할 때 ‘세음’은 ‘세상의 소리’이에요. 세상 사람들의 답답함, 그들의 괴로움, 그들의 아픈 마음, 그 신음소리를 들어주는 것이죠. 들어주는 것의 핵심은 알아주기예요. 직접 보면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래서 ‘관’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모든 중생의 아픔을 여실히 안다는 거예요. 그런 분을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생의 답답한 마음, 즉 남편, 자식, 아내가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속 시원히 다 하도록 그 마음을 헤아려줘야 합니다. 이렇게 상대편의 말을 들어주고 상대편의 마음을 알아주는 마음이 되면 더 나아가 고통 받는 사람들, 말 못하는 사람들, 여자라고 억압받고, 천민이라고 억압받고, 이념이 다르다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줘야 합니다. 최근 북한에서는 수백만 사람이 죽었는데도 이 세상에서는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아픈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놓고 얘기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마치 장벽에 가리면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듯이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니 그 고통은 세상에 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없는 일이 아니에요. 이 세상에는 이런 수많은 고통의 신음소리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듣지 못하고 있고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주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어가질 수 있을 때 이게 바로 ‘대자대비(大慈大悲)’ 입니다. ‘대비(大悲)’라는 것은 ‘상대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이고 ‘대자(大慈)’는 그 아픔을 함께 나누어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관세음보살님을 ‘대자대비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관세음보살에게 도움을 구하는 중생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치지만 중생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님은 괴롭지 않고 행복합니다.
네 번째는 ‘가진 것 나누어 주기’입니다.
그러나 자기 살기에도 바쁜 우리들은 북한 사람들 얘기는 남의 이야기일 뿐이지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 굶어 죽는 얘기는 덜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내 작은 문제는 훨씬 큰 고통이라고 느낍니다. 입시생 아들을 둔 사람은 아들이 시험에 떨어지면 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또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아내에게 있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자신의 몸에 무슨 병이 생기면 그게 큰일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살이 쪄서 큰일입니다. 그러나 작은 일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어려운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주고자 하는 ‘나눠주는 마음, 나누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배고플 때를 생각해서 배고픈 사람을 돕고, 내가 병들 때를 생각해서 병든 사람을 돕고, 내가 헐벗을 때를 생각해서 그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먹는 음식 중 한 숟가락이라도,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작은 약이라도, 그들이 입을 수 있는 옷 한 벌이라도 남을 위해서 나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 나누는 마음에는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내 부모가 아니라도 이웃에서 홀로 외로이 누워있는 노인이 있다면 돌봐주는 마음이 일어나고, 내 아이가 아니라도 학비가 없어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이 있다면 학비라도 대주는 그런 마음입니다.
이런 나누는 마음, 이 나누는 마음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부자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자’ 이지요, 아무리 돈을 많이 가져도 마음이 넉넉지 못한 사람은 늘 남으로부터 얻으려는 생각만 하는 거예요. 얻으려는 생각만 하는 사람은 사실은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자로 살려면 이런 나누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바로 이웃인 북한에서는 식량난의 고통, 땔감이 없어서 추위에 떠는 고통, 약이 없어서 아픈 고통, 아이들은 책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고통, 옷이나 이불도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누는 게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나라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지구 저편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사람의 마음을 알아서 그 사람들의 아픔을 알아주고 덜어준다면 바로 내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다섯 번째, ‘모든 것 사랑하기’입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대해서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낸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 늘 이렇게 부정적으로 보고 불평하고 불만하게 되면 세상에 대해서도 파괴적인 에너지, 자기 자신도 파괴하는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작은 것도 나누어 가지는 마음을 낼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온갖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온갖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으려고 합니다. 사랑받으려고 코 수술을 하고, 눈 수술을 하고, 턱 수술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해서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모를 고치는 것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지요. 먼저 자기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열등의식만 더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수술 할 돈이 없어서 한탄, 이렇게 생긴 내 자신에 대한 한탄, 나를 낳아준 내 부모에 대한 한탄, 그러면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정성만 자꾸 생겨요. 자기에 대한 긍정성이 있어야 행복해집니다.
꽃을 사랑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산과 바다를 사랑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면 내가 행복합니다. 세상의 뭇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면 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사랑받으려 하면 미움이 생기고 사랑하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오늘부터는 빙긋이 웃으면서 살아 보세요. 병원에서 암이라 진단해도 빙긋이 웃으세요. 오늘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의사가 암인데 뭐 그리 좋아서 웃느냐 물으면 “오늘 알아도 암이고 내일 알아도 암이니 하루라도 빨리 알면 좋지요.” 라고 말씀하세요. 이렇게 현실에 근거하고 사실에 근거하고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 이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바로 우리 부처님이 위대한 것은 이렇게 아주 소박하고 진실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허황된 얘기를 우리에게 해 준 게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 허황된 꿈을 가지고 살 때는 부처님의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데 나이가 들어 허황된 생각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쉽게 다가오게 됩니다. 젊을 때부터 그것을 알면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삽니다. 사실은 나이와 상관없어요. 70이든 80이든 지금이라도 알면 지금부터 행복합니다.
지금부터 행복하면 과거에 괴로웠던 것도 오늘의 행복을 위한 밑거름이지요. 연습이었지요. 지금 행복하면 과거가 다 좋아집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고 이 법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하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좀 덜 깨친 사람이에요. 딱 깨치면 그냥 좋은 거예요. 과거가 그랬기 때문에 지금 더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이 그냥 지금 좋아요. 내일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나날이 좋고 때때로 좋고 년년이 좋고 그런 거예요. 지금 좋으면 과거도 다 좋아지는 거고 지금 좋으면 미래도 좋아지는 거예요.
새해에는 그런 행복한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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