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탁소리-법상스님 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직접 실천하셨고,
심지어 깨달음을 이루신 뒤에도
열반하시기 직전까지 이 방법대로
수행을 닦아가기도 하셨던
아주 중요한 수행방법입니다.
물론 이 수행법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수행법은 너무 쉽습니다.
너무 쉽고 단순해서
자칫 이 얘기를 듣고 나면
많은 분들이
당황해 할 수도 있고,
어처구니 없어 할 수도 있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수행이란
고도의 집중력과
철인적인 엄청난 노력과
범부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특별한 사람만이 해 낼 수 있는
특별한 어떤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고정관념을 다 놓아버리시기 바랍니다.
놓아버리지 않으면
이 수행법을 얘기듣고
'그 정도는 나도 알아'라거나,
'난 그 정도의 초보수행은 이미 다 떼었고
좀 더 고난도의 수행법이 필요해'라거나,
'그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니 말이 되?'라거나
수많은 분별심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 수행법을
처음 수행을 시작한
초보자들이나 실천하는
아주 기초단계의 예행연습같은 수행법이라고
잘못 알고 계셨던 분들이 많습니다.
그 모든 잘못된 편견을 깨고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수행법은
호흡관 혹은 수식관
혹은 '아나빠나사띠'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호흡을 통한 수행방법입니다.
깨어있음이란
과거나 미래가 아닌,
오직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삶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어떤 고민과 번뇌와 욕심이 있더라도,
그 어떤 삶의 거대한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을 풀 수 있는
근원적인 열쇄는 오직
'지금 여기'에서 현존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의 깨어있음이야말로
우리 안의 본성을 일깨우고,
우리를 자연의 본성과 합일하게 만들며,
진리의 성품, 부처님의 답변을
우리 안에서 우러나오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진리의 통로요, 삶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호흡'이라는 것은
유일하게 언제나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현상입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우리 삶도 끊어지고 맙니다.
호흡을 매개로
생과 사가 나뉘어집니다.
바로 이 호흡이라는
'지금 여기'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야말로
우리가 끝끝내 붙잡고 가야 할
가장 좋은 수행의 재료입니다.
호흡을 관찰해 보십시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관찰하세요.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세요.
호흡을 관찰한다는 것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아주 단순합니다.
호흡을 관찰하세요.
호흡이 들어오면
호흡이 들어오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관하고,
호흡이 나가면
호흡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됩니다.
어떤 분은 이것도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왜 이것이 어렵지요?
너무 쉽고 단순해서 어렵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그건 너무 쉽고 단순해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그렇게 쉽고 단순할까요?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을
과연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아니 몇 분, 아니 몇 초 동안 지속시킬 수 있을까요?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은
다만 몇 초, 몇 십초도 못 버티고
호흡을 놓쳐버리기 십상일 것입니다.
호흡을 가만히 예민하게 살펴보면
호흡도 그냥 똑같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시시각각으로
우리 마음 변하듯이
그렇게 끊임없이 변해갑니다.
아주 예민하게 살펴보면 보입니다.
하루 종일 호흡을 관찰해 본다면,
우리 마음처럼이나,
이 호흡이라는 것이 얼마나
화려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호흡이 거칠고 때로는 부드러우며,
때로는 길고 때로는 짧습니다.
또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차갑기도 하며,
때로는 무겁고 또 때로는 가볍습니다.
말로 표현 불가능한
더 많은 종류의 호흡의 변화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애써 말로 표현하려 하지 말고,
다만 그렇다는 것을 바로 보고 알면 됩니다.
화가 났을 때의 호흡과,
손을 씻을 때의 호흡과,
사랑을 나눌 때의 호흡과,
걸을 때의 호흡과,
앉아있을 때의 호흡과,
잠들기 직전의 호흡과,
밥 먹을 때의 호흡과,
차 마실 때의 호흡과,
이 사람을 만날 때의 호흡,
저 사람을 만날 때의 호흡이
낱낱이 다 다르고 새롭습니다.
제행무상,
세상 모든 것은 변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입니다.
다른 것을 문제삼을 필요는 없어요.
다만 그렇다는 사실을 바라보면 됩니다.
이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호흡이 한 번
들어오고
한 번 나갈 때
그 한 번의 호흡에 숫자 '1'을 붙이십시오.
그리고 두 번째 호흡이 들어오고 나갈 때
'2'라고 숫자를 붙이세요.
세 번째는 '3'
그리고 '4' '5' '6'...
그렇게 '10'이라는 숫자를 붙이고 나면
이제는 거꾸로 '9' '8'...
하면서 '1'까지 다시 내려오세요.
그렇게 1부터 10까지
다시 10에서 1까지 내려오게 되면
이 수행의 한 싸이클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호흡에 숫자를 붙여가면서
호흡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1부터 10까지
한번에 다 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하다보면 3, 이나 4에 가서,
혹은 2 쯤에 가서
벌써 잡념이 생기거나,
또 다른 생각들이 쏜살같이 스치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럴 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다시 '1'로 내려와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마 때로는 너무나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생각들을
무시하면서 계속 숫자를 세고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것은 반칙입니다.
이것은 숫자를 많이 세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생각이나 번뇌라도 바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10까지 세고 다시 1까지 내려오는
한 싸이클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잡념을 관하고
다시 1로 돌아오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틈나는대로
호흡관을 한 싸이클씩
혹은 5 싸이클이나, 10싸이클씩 돌려보세요.
그것이 바로 이번 주
우리가 함께 수행할 수행의 재료입니다.
한 싸이클을 돌리면서
호흡을 순일하게 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시도하는 즉시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루 일과 중에
적어도 10번이상 시도를 해 보세요.
그리고 몇 번이나 몇 싸이클이나 했는지를
수행일기에도 기록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은 새수하면서,
공양하면서,
길을 걸으면서,
차를 기다리면서,
지하철 안에서,
일하는 도중에 잠깐 잠깐씩,
점심공양 후 쉬는 시간에,
사람을 기다리면서,
운전하면서,
절하고 난 뒤 좌선에 들어서,
잠자려고 잠자리에 누워서 등등
하루 중 이 수행을 할 수 있는 때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절은 0.2평의 공간이 필요로 하지만,
이 수행은 그 어떤 공간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언제 어느 때든,
잠시, 5분, 10분, 아니 2~3분만 시간이 나더라도
어디서든 언제든 할 수 있는 수행법입니다.
이러한
'숨을 내 쉬고 들이쉬는
모든 순간순간마다 하나의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을 하는 것이
부처님의 수행법으로 널리 알려진
아나빠나사띠 수행인 것입니다.
"붓다의 호흡법, 아나빠나사띠"라는 책에서는
경전을 인용하여 이 호흡수행법을
이 자체로써 붓다가 설한
최상의 수행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잡아함경]에서는
"호흡수행은 성자의 세계, 신들의 세계,
청정의 세계, 배움의 세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세계,
삶 이 자체가 최상인 세계, 여래의 세계이다"
라고 말 하고 있으며,
[쌍윳다니카야]에서는
"수행승들이여, 이교도들이
'고따마는 우안거 동안 무엇을 닦고 익혔는가?'
라는 질문에
'벗들이여, 세존은 우안거에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하고
호흡에 대한 알아차림의 집중을 익힌다'
라고 대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실천하시고
그 제자들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설해져 내려 온
삶을 관하는 구체적인 수행법
'아나빠나사띠'라는 호흡관을
이번 한 주 동안 수행하고 닦아 보시고,
그 호흡수행일기를 함께 나누어 보며
우리의 이번 백일 안거를 보내도록 합시다.
'★~無明속의등불~★ > 신행길라잡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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