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공부를 꾸준히해야 우룡스님(울산 학성선원조실, 경주 함월사 조실)
부처님의 경전은 어느 것이나 같습니다.
금강경을 읽거나 반야심경을 읽거나 관음경을 읽거나 모두가 같습니다.
이것과 저것의 차별을 생각하지 말고 한 가지를 중심에 두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불교의 이야기는 모두가 우리의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염불, 주력, 화두, 경전공부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만
전부 우리의 마음자리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불교 경전은 어느 경전을 막론하고 마음자리를 밝히는 이야기요,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방법을 이야기해놓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불교 경전을 공부하는 것을 간경(看經)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간(看)’자에는 눈으로 본다는 뜻만이 아니라 ‘관(觀)’자와 똑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전을 연구하는 태도는 눈으로 글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뜻을 생각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합니다.
간경이라고 하지만 관경(觀經)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책을 되풀이해서 계속 읽고 다라니하듯이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뜻을 생각하면서 읽어 그 내용을 꿰뚫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 하나를 의지하여
이 경에서는 맺혀 있는 응어리 푸는 방법을 어떻게 이야기했느냐’를 연구하고 배워 나가,
내 가슴의 응어리를 없애고 마음의 병통을 떼어내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응어리가 풀어지면 불교의 표현대로 ‘벗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탈’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이 응어리가 남을 때에 모든 장애가 여기에서 일어나지만
이 응어리 하나하나를 드러낼 때 지나간 시간에 쌓았던 업장의 인연들이 하나씩 하나씩 풀어지는 것입니다.
‘내 가슴의 응어리라는 것’은 ‘눈’이라는 물건을 가지고는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때를 만나면 ‘나’를 매우 고통스럽고 곤혹스럽게 만듭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긍정을 합니다.
‘아, 나에게 이런 장애가 있었구나.’ ‘아, 나에게 이러한 업이 있구나.’ 하지만 응어리가 보여야 그 응어리를 없앨 수 있을 텐데
우리의 눈에는 그 응어리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업장소멸의 한 방법으로 경을 부지런히 읽어 응어리를 풀어내고 병통을 떼어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자라면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이 방법을 실천하여 마지막 해탈의 차원에 이르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모름지기 불자는 부처님의 경전을 소중히 하고 가까이 하여야 하며, 부처님을 대하듯 하여야 합니다.
경전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한 구절 한 구절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경전을 연구하는 올바른 태도입니다.
불교를 폭넓게 이해하는 데에는 『능엄경』 이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능엄경은 대우주의 시작부터 마지막 깨달음까지를 이론적으로 체계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서술해 놓은 경전입니다.
세계의 시작, 중생의 시작, 업의 시작에서부터
어떻게 우리가 대우주세계와 하나가 되고 어떻게 얽혀지며 살아가는가를 또렷하게 이야기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마(魔)를 항복받는 방법과 깨달음의 세계까지 나아가는 법을 밝혀놓았습니다.
그리고 수행방법의 체계를 정확하게 이야기한 것은 『원각경』입니다.
비록 많은 내용은 아니지만 깨달음과 수행해 나가는 차제를 가장 간결하고 정확하게 나타내주고 있는 경전입니다.
또한
끝없이 커나가는 대우주에 발을 맞추어 불자들이 향상하는 데에는 『금강경』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것도 붙들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미련 두지 말고
‘한다’도 없고 ‘했다’도 없고 주체도 없는 그 속에서 향상해나가는 방법을 설한 경전이 금강경이기 때문입니다.
대혜 스님의
『서장』은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참으로 간결하고 명확하고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서장은 선에 관해서만 아니라
염불, 주력, 화두, 경전공부하는 사람들이 꼭 명심해야 될 과정과 실천, 걸려서는 안 되는 병통들을 간절하게 지적해놓았습니다.
육조단경은 어디든지 걸려서는 안 된다는 대우주의 이야기를 축소시켜 놓은 것입니다.
내용으로 이야기하면 부처님의 금강경 이야기나 육조 스님의 단경 이야기가 똑같습니다.
이 다섯 가지 중 재가불자들에게
『서장』 『금강경』 『육조단경』을 많이 권하며 한평생 가까이 하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그런데 요즈음 재가불자들은 경전을 신앙용으로만 독송할 뿐 경전을 이해하고 파헤치는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놓지 않고 부지런히 연구하다 보면 자기의 마음이 바뀌고 경계가 바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똑같은 금강경을 읽다가도
어떤 날에는 그 구절이 새롭게 가슴에 와서 닿기도 하고
늘 능엄경을 읽다가도
어떤 날에는 그 말씀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져 울게도 됩니다.
경전을 꾸준히 읽다 보면 내 마음의 차원 따라 내 마음의 파도따라 향상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옛 스님네들은
어떤 경전 하나를 선택하면 그 경전을 기준으로 삼아 스스로의 수행과정을 점검하고 늘 지송하며 정진했습니다.
이처럼 재가불자들도 하나의 경전을 중심으로 삼고 정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경전을 기둥으로 삼아
나의 수행을 돌아보고
나의 차원을 살펴보고
나의 향상을 점검하면서 꾸준히 지송하면 됩니다.
아울러 다른 불교책을 많이 접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부처님의 경전은 끝이 없습니다.
깨달음도 끝이 없습니다.
깨달으면 다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도 있지만 깨달음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씩 깨달아가고
이런 작은 깨달음들이 쌓이고 쌓여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가야 마지막 깨달음이 오는 것입니다.
자기의 내적 향상이 있어야 비로소 바깥세계가 거룩하고 고맙고 아름답고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자기 정진이 없으면 자기 정도로만 쳐다보게 되고 자기 정도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안으로 부지런히 정진을 하여 자기 안에서 빛이 나게 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쌓이면 저절로 바깥 세상도 넓어지고 빛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느 경을 읽으면 공덕이 많고 어느 경을 읽으면 공덕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경전은 어느 것이나 같습니다.
금강경을 읽거나 반야심경을 읽거나 관음경을 읽거나 모두가 같습니다.
이것과 저것의 차별을 생각하지 말고 한 가지를 중심에 두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정녕 원을 세운 불자들은 원과 함께 정한 한 가지 공부를 끝까지 밀어부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염불이면 염불,
간경이면 간경,
참선이면 참선,
주력이면 주력,
한 가지 공부를 선택해서 죽어라고 밀어붙여 끝까지만 가면 같은 차원에 도달해서 법을 같이 쓸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부처님의 경전은 모두가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방법을 이야기해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를 꾸준히 연구하면 전체가 다 풀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공부를 동시에 하려는 욕심만 부리지 마십시오.
한 가지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면 결국 그 힘이 모여 모든 것을 해결해 줍니다.
이 공부가 끊어지지 않도록 실날처럼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부디 경전공부를 꾸준히 잘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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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를 통한 업장소멸
우룡큰스님
내가 처음 해인사 강원에서 글을 배울 때는 한 30명 가량 함께 시작을 했습 니다.
대강사였던 나의 은사 고봉스님께서는 개별적으로 지도해주시지 않고,
마을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식이었습니다.
전날 배운 글을 다음날 차례대로 암송을 시켰고,
못외우면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예불문과 천수경은 어른이 한번 읽어주시면 따라 읽고, 그 다음날 배운 데까지 암송해야 했습니다.
초심반에서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는 암송을 한 다음 서로 토론도 하고 짝을 지어 공부를 했습니다.
이 초발심자경문을 배울 때는 그렇게 애써서 책을 읽는다는 생각없이 지냈습 니다.
그런데 밤마다 글 속에서 잠을 자고 글 속에서 뒹굴었습니다.
벽도 글이고 천장도 글이고 바닥도 글이고 사방이 전부 글이었습니다.
미처 암송을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잠자리에 누워서도 걱정이 되었는데,
잠속에서 그 막히는 구절이 그대로 드러나 암송이 되는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내가 초심을 마치고 치문반(緇門班)으로 올라 갔을 때,
은사스님께서 "가르치는 것도 배워야 한다"고 하시며, 나에게 초심반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초심을 끝내고 뒤돌아서서 초심반을 가르치고,
사집(四集)을 배우면서 또 뒤돌아서서 치문반을 가르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앞도 뒤도 모르고 위험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 때 내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옴마니반메훔' 주력을 통하여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를 자꾸 체험하여서인지,
글을 읽고 남을 가르침에 있어,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을 꼬집어 평을 하고 판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불교의 경전은
모두가 우리의 마음자리를 밝히고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공부인
'관세음보살',
'이 뭐꼬',
'옴마니반메훔' 등과 함께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이 공부의 힘이 뿌리가 되어
경전 쪽으로도 저절로 연결이 됩니다.
곧 이처럼 모든 공무가 마음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집(四集:서장, 도서, 선요, 절요)공부는 6.25 사변 전에 해인사 학봉노스님 밑에서 다 끝냈습니다만,
사변 후 흩어졌던 사람들을 모아 다시 공부를 시작할 때
사교반(四敎班)을 구성할만한 인원이 모이지 않아 사집공부를 다시 한번 더 하고 나서야
사교(능엄경, 기신론, 금강경, 원각경)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도 능엄경은 두세번 되풀이하여 공부했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읽으면 업장참회가 된다'는 마음에서 능엄경을 애를 써서 공부하고 열심히 연구했습니다.
그러다가 밤에 잠이 들면 내 배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을 모두 토해내는 꿈을 자주 꾸었습니다.
평소에 음식을 잘 못 먹으면 속이 답답하다가 토할 때 숨이 막 넘어 가듯이, 꿈속에서도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아!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것 아닌가.'
이런 걱정을 하면서 배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데
시커먼 하수도 찌꺼기같은 피와 머리카락 등이 엉킨 지저분한 것들이 목에서 계속 넘어와 방바닥 전체를 다 덮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꿈 속에서는 그렇게 고통스럽고 숨이 막혀와도,
이튿날 일어나면 마음이 깨끗해 지고 몸상태도 아주 맑고 상쾌했습니다.
어른들께 그런 이야기를 드렸더니 진단을 내려주셨습니다.
"업장소멸을 뜻하는 좋은 현상이다.
여태까지 버릇이 되었던 탐,진,치 삼독(三毒) 과 나에게 나쁜 것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는 꿈이다."
"앞으로 경전 연구든지 중노릇하는데 좋은 보탬이 될 것이다.
방해가 떨어지고 장애가 떨어지고 업장이 녹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경전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염불이나 기도를 열심히 할 때처럼 업장소멸이 됩니다.
출전: 도서출판 효림 우룡스님저 불교의 수행법과 나의 체험
'★~無明속의등불~★ > 신행길라잡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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