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얻는 법 - '구나, 겠지, 감사'
"내가 방 청소를 했는데 형이 또 청소를 할 때 화가 났다."
"친구가 자기 생일 파티에 초대해 주지 않아 서운했다."
이런 식으로 크고 작은 불유쾌 정서를 반복, 반복, 또 반복하면서
반성도 없이 사는 것이 중생 놀음이다.
"즉(卽)한 순간에 깨어 있으라."
깨어 있는 각성은 평화를 잃지 않는다.
각성은 깨어 있는 힘이 길러진 만큼 그 명징성(明澄性)이 높아진다.
친구가 생일 파티에 초대 안 했다고 서운해진 것은 깨어 있음의 차원에서 보면
유치한 일이다.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되지 않은 사실을 안 순간, 깨어 있는 자는 '구나'한다.
즉 '친구가 자기 생일 파티에 나를 초대하지 않았구나' 하고
그 사실을 그냥 바라다본다.
'바라다보는 힘 기르기'란 수도의 중대한 맥이다.
이 힘이 약한 자는 자신이 쌓아온 삼독의 업장에 휘둘림을 당할 수밖에 없다.
순간 화가 났더라도, 서운해졌더라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더라도,
그 일이 일어나게 된 상황을 되짚어서
'바라다보는 힘 기르기'의 공부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일거 삼득(一擧三得)의 공덕이 있다.
과거의 업을 정화하는 이익, 미래의 업을 덜 짓게 되는 이익,
깨어 있는 힘의 탄력을 얻어가는 이익이 그것이다.
보다 효과적으로 본업에 몰입하려면
평화와 분노의 경계에 휘말려드는 희생을 극소화해야 한다.
그 좋은 방편이, 즉한 순간에 '구나·겠지·감사'하는 것이다.
▒ '구나·겠지·감사'의 실천
<1> 내가 방청소를 했는데 형이 또 방청소를 할 때 화가 난 경우
- 구나 : '형이 청소를 하는구나'하면서「구나」의 힘, 바라다보는 힘을 기른다.
- 겠지 : '방 청소가 되어 있는지 몰랐거나, 알았다 하더라도
형 마음에는 안 들었다든지 등등의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겠지」의 힘, 곧 바르게 생각하는 정사유(正思惟)의 힘을 기른다.
- 감사 : '이것도 청소라고 한 것이냐?' 한다거나 '야! 청소 다시해라'는 식으로
신경질을 돋구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감사」한가 하면서,
긍정시각의 힘을 기른다.
<2> 친구가 자기 생일 파티에 초대해 주지 않아 서운해진 경우
- 구나 : '친구 모모가 나를 초대 안 했구나.'
- 겠지 :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깜박 잊었거나,
엄마나 친구에게 초청의뢰하는 과정에 누락 되었거나
우리 집 식구들이 나 없는 동안에 소식을 받았으나
잊고 못 전해 주었거나 등등 무슨 사정이 있겠지.'
- 감사 : '우리 반 급우들을 다 초청하고 나만 누락시킨 경우를 상상해 보면
정말 끔찍한 일인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감사할 일이요,
초청 못하는 이유를 쑥덕쑥덕 주변에 흉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 비하면 이건 감사한 일이며,
어떻게 하다 누락된 이 상황에 대해 친구는
미안해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평소 그 친구가 내게 보여 줬던 이런저런 일들을 떠올리면,
정말 감사할 일이 있을 뿐이다.'
이렇듯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사례를
바로 공부 소재로 활용한다는 것이 신나는 일 아니겠는가?
천재란 반복이 낳는다.
부처는 관행(觀行)이 결정한다.
아무리 좋은 목걸이라도 목에 걸 때 의미가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오솔길이더라도 걸으며 즐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구나·겠지·감사', 이것은 성자들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 추출해 낸
일미(一味)의 한 방편인데,
여러 인연 있는 마음 공부인들에게 좋은 약재가 되었으면 한다.
실천이 길이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는 법.
한두 번 실습해 보고 집어치운다면 의미가 없다. 적어도 백 번은 권한다.
불쾌한 마음이 드는 상황 백 가지 경우를,
기계적으로가 아니고 명상적으로 '~구나' '~겠지' '~감사'하고
관행해 본다면 평화와 분노의 경계를 수용하는 힘이 놀라울 정도로 길러질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라. 경계에 걸려 속 상한 것이 불행의 전반이 아니던가.
우리의 혼은 저 밑뿌리로부터 절규하고 있다.
'해탈하고 싶어요' '평화롭고 싶어요'
'구나·겠지·감사'는 그 절규에 부응할 것이다.
또 이 명상을 하다가 보면 이것이 수도의 전부다 할 만큼의 체험을 얻을 것이다.
어느날 '스님의 법문을 접하고「구나 명상」을 백회 이상 했고,
그 공덕으로 이제 경계로부터 많이 자유롭습니다' 식의 편지
세 통만 받아 보았으면 한다.
이러한 마음 공부인이 있다면, 불원천리 찾아뵈면서 격려하고 싶다.
법당에서 울려나오는 행자님의 정근 목탁 소리,
겨울 새벽 하늘에 빛나는 별들의 맑음이 좋기만 하다.
<출처: '마음 알기 다루기 나누기' 용타스님>
용타스님의 책 후반부에 등장하는 3단계 비법이 내겐 즉효약이다
.
1단계는 마음을 상하는 일을 당했을 때
'그가 내게 이러는구나' 하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절대 쉽지 않아서
'아니 감히 내게?' 하는 마음이 들며 속을 끓이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러나 1초만 마음을 가라 앉히고, '그가 내게 이러는구나' 하고
마음 속으로 말하면 됩니다.
2단계는 '이유가 있겠지' 하며 양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 입니다.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누구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는 이유가 있는데,
단지 내가 그 이유를 모를 뿐이죠.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심하게 화를 내는 것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어도,
그것은 내 기준일 뿐입니다.
상대에게는 이미 충분한 근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번 반복된 자극에 꾹 참아왔던 것이 폭발한 것일 수도 있죠.
물론 애초에 상대를 그렇게 만든 건, 내가 아닐 수도 있구요.
때로는 그 사람이 과거에 입은 상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가 그러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3단계는 '~하지 않는 게 감사하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것 입니다.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은 항상 있습니다.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더 나쁜 상황이 용케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좀 다행스럽겠죠.
※ 예를 들어 식당에서 불친절한 직원이 못마땅할 때
화를 내기 전에 '이분이 손님에게 불친절하구나'라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고 나서,
'저러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몇 가지 이유를 떠올려 봐도 좋다.
만일 아이가 아픈데도 가보지 못하고 식당에 붙잡혀 있다고 생각하면,
웃지 않는 것도 당연하고, 실수하는 것도 용서된다.
그보다 더 최악의 상황 즉, 그릇을 던지지 않은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종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 언니가 유별나게 짜증을 부릴 때
1단계: 언니가 그러는구나..
2단계: 남자 친구랑 싸웠나..
3단계: 날 때리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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